대안으로서의 기억

기억의 부활은 위기의 증상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대안이기도 하다. 이제 그간 역사라는 공적 인 영역에서 억압되거나 무시되어왔던 사적인 기억들이 새롭게 조명받게 된다. 사실 한 사회의 과거가 특정한 계층이나 소수집단의 과거로 대표될 수 있다는 발상은 무리한 것이다. 그들의 과거가 주변부나 소수자의 과거보다 객관적 진실에 가깝다는 근거 또한 없다. 기억담론은 종래의 ‘역사’가 자민족중심주의, 엘리트주의, 역사의 연속성에 대한 공연한 믿음을 부추겨왔던 점을 문제삼으며 등장했다. 그것은 과거가 본래 확고한 형상을 갖기보다, 현재 우리의 정체성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 각기 상이한 모습으로 재현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따라서 과거가 더 이상 역사의 이름으로 일원화되기는 힘들어졌으며 갖가지 과거, 즉 편향적이고 분산적이며,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과거들 나름의 권리가 인정받게 된다. 그 간 과거라는 왕국에서 역사는 주인 행세를 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왔다. 역사의 왕권은 이제 기억이라는 지방호족들의 원치 않은 견제를 받게 된 것이다. 기억담론은 이미 기성화한 역사를 넘어서 과거의 다양한 재현방식과 다양한 정체성들을 포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만하다.

기억담론의 양면

이처럼 역사의 대안으로서 제기된 기억담론은 이념적으로 볼 때 진보와 보수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 우선, 진보적인 기억담론의 전 형은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의 옹호자인 리오타르(Jean-Francois Lyotard) 등에게서 발견된다. 이 급진적인 프랑스 철학자에게 여 사’란 모든 차이를 부정하여 전체로 묶는 ‘거대서사’로, 이를 기억으로 대체하는 일은 자기중심적이고 타자의 인정을 거부해온 서구 근 대문명과 그 이념적 토대인 계몽사상에 대한 저항을 의미했다. 료타르에 따르면, 나치의 유대인 학살, 즉 ‘홀로코스트(Holocaust)’의 기 억은 이러한 기억의 효과가 가장 극명하게 발휘되는 영역에 속한다. 왜냐하면 홀로코스트야말로 타자를 부정하는 서구적 근대성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Auschwitz)’ 수용소의 끔찍한 경험을 폭로하는 일은 곧바로 서구적 근대성의 모순을 폭로하는 일인 만큼, 역사의 관점을 벗어나는 것이 마땅하며 또한 그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입장은 표면적인 급진성에도 불구하고 보수적 입장과 공유될 수 있는 면이 많다. 원래 근대성에 대한 비판은 보수주의의 본 령이었다. 계몽사상과 혁명이 초래한 급격한 변화가 과거의 힘을 통 해 견제되어야 한다는 발상은 지극히 보수주의적이다.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가 우리를 정신적 위기의 상태로 몰아갈 때, 다양한 기억의 보금자리들, 예를 들어 박물관의 유물이라든가 유적지 또는 역사 이야기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정신적 안식처를 마련해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독일의 신보수주의 철학자 뤼페(Herman Lübbe)나 마르크바르트(Odo Marquard) 등은 과거가 펼치는 다양한 색조를 그 자체로 풍요로이 음미할 것을 권한다. 그것은 과거를 총체적으로 ‘비판’ 하는 서구적 계몽 전통에 대한 거부에 다름아니다.

기억 담론을 태동시킨 근본적 문제의식에서 진보와 보수 진영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양측은 모두 근대성의 위기를 지적하며 과거에 대한 종래의 역사적 사고방식을 재고하도록 종용한다. 과거의 지평은 이제 합리성과 객관성, (자기도취적인) 주체성의 영역을 넘어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천적 결론에 이르면 양측은 매우 대 조적인 노선을 취하게 된다. 기억담론은 과거에 대한 비판과 향유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한쪽은 과거의 신화를 해체하려는 반면, 다른 쪽은 과거를 재신화화하고자 한다. 과거의 전유를 놓고 벌이는 이와 같은 이념 경쟁은 이와 관련된 제반 영역들, 즉 박물관, 기념 비, 기념식, 역사 드라마 역사화(歷史畵), 역사교육 그리고 역사학 등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중 시간의 과학을 자처해온 역사학이야말로 가장 치열한 격전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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