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식의 현상학

기억이란 한 주체가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현재와 관련짓는 정신 적 행위 및 과정이다. 기억은 과거를 한편으로는 지나가버린 것으로 확정지우면서도 동시에 현재화함으로써 과거의 시간적 지위를 변화 시킨다. 따라서 기억의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와 같이 인간정신에 내생적인 시간의식의 양상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현대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Paul Ricoeur)의 현상학적 접근은 이에 대 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에 따르면 시간이란 논리적 모순, 즉 존재와 비존재의 모순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적인 것’이란 우리 의식에 뚜렷이 현상하면서도 또한 단지 하나의 점으로서 전혀 연장(延長)’을 갖지 않으며 따라서 측정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것은 과거와 미래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리쾨르는 묻는다. 어떻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측정할 수 있는가? 만일 과거가 이미 존재하지 않고 미래가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가 항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간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아우구스티누스의 개념

그는 시간체험의 이러한 근원적인 아포리아(aporia)를 해결하기 위해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의 『고백록」 제11서에 나오는 ‘정신의 이완(distentio animi)’ 개념을 수용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시간체험 속에서 우리의 정신은 다가올 것에 대한 기 대, 현재하는 것에 대한 주목, 지나간 것에 대한 기억 간에 상호 긴 장(intentio)’을 이루고 있다. 시간의 이러한 세 가지 양상(tria tempora) 간의 ‘긴장’은 우리의 정신이 이들을 현재의 세 가지 양상으로 ‘전이 함으로써(transire) 비로소 ‘이완’ 된다. 이에 따라 세 겹 의 현재, 확장되고 변증법적으로 파악된 현재가 나타난다. 즉 과거 화된 것의 현재, 현재적인 것의 현재, 미래적인 것의 현재가 바로 그 것이다. 이처럼 ‘정신의 이완을 통해 기다림, 기억, 주의력은 변증법적으로 매개된다. 우리의 시간체험에서 미래는 현재의 기대를 통 해서 비로소 미래로 존립하게 되며 기대는 이미 현재적인 것으로 존재 한다. 또한 과거는 기억 속에서 ‘흔적’으로 우리에게 현존한다. 리쾨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사고를 따라, 시간체험의 아포리아가 인간의 존재론적 결함과 결부된다고 설명한다. 신이 아니 우리 인간은 현존재 이전의 시간을 생각할 수 없다. 시간은 영원성 의 타자로서 오직 현재하는 것과의 관련 속에서만 체험될 수 있다. 시간은 결국 우리 영혼 안에 거처를 갖는다. 이와 같은 준공간적인 존립양태로 말미암아 시간은 어느 정도 측정 가능하다.

기억의 문제와 관련하여 시간의식에 관한 리쾨르의 현상학적 접근은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기억이 미래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현재하는 것에 대한 ‘주목과 교호작용 속에 놓여 있음을 지적한 점 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기대와 기억 그리고 주목은 동일한 근원을 갖는다. 리쾨르는 과거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한 최근의 저서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그에 따르면,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 것의 현존이라는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던진다. 과거란 이미 존재했던, 그러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를 과거이도록 하는 존재론적 기준은 그것이 바로 상실된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것 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기억이 지시하는 대상(referent)’ 으로서 만 존재한다. 이처럼 과거의 문제에 있어서 인식론과 존재론은 괴리된다.

이와 함께 과거는 또 하나의 수수께끼를 던진다. 우리가 그 상실 된 대상에 대해서 갖는 이미지-또는 흔적-는 얼마나 원본과 유사 한가? 그것은 얼마나 신뢰할 만한가? 이에 대해 리쾨르는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 기억은 우선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것은 과거의 흔적을 능동적으로 우리의 기대 및 주목과 연관 짓는다. 과거로의 지향은 미래로의 정향에 의해 역으로 영향받는다. 기억을 통해 과거는 우리의 정신 안에 현존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상력에 대한 강

조가 반드시 기억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기억은 기억 되는 대상 자체보다 지나간 시간을 지시함으로써 과거와의 시간적 격차를 보증한다. 기억을 통해 과거는 현재와는 다른 시간에 속하는 비존재로서의 독자적 지위를 얻게 된다. 기억은 상상력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과거에 대한 상상적 표상(répresentance)’ 으로서의 기억은 과거에 대한 지시 또는 재현(représentation)’ 으로 서의 기억과 상보적 관계를 갖는다. 리쾨르가 제시한 시간의식의 현상학에서 기억은 과거의 존재와 비존재 간의 모순을 중층적으로 매개하는 위상을 갖는다. 기억 없이 과거라는 시간성은 온전히 성립될 수 없다. 기억이 갖는 이와 같은 매개체적 성격은 기억의 자기성찰성을 뒷받침하는 조건이 된다.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관계를 세우는 일이므로 그 자체로 시간성에 대한 성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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