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화된 시간 – 스키마의 붕괴

기억이 과거를 현재화할 수 있다면 그것은 기억이 항상 특정공간과 결부됨으로써 구체적인 모습을 띨 수 있기 때문이다. 전술하였듯 이, 모리스 알박스는 기억과 공간의 관련성에 대한 선구적인 견해를 개진한 바 있다. 상상적 공간의 이미지는 집단기억을 매개하는 상징 적 기호로 기능한다. 근대 역사학이 과거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전까지 인류는 과거를 전유하기 위해 주로 공간 이미지에 의존했다. 서구의 유서 깊은 수사학적 기억술(ars memoriae) 전통이 바로 이를 입증한다. 그것은 과거의 체험을 지적으로 분류하고 저장하며 유통시키는 기법으로, 먼저 체험된 사실을 감성적 환기력이 있는 이미지에 결부시키고 난 후 이 이미지들을 친근하면서도 상상적인 기억의 장소(loci memoriae)’의 건축적 디자인 속에 배치한 다. 여기서 이미지들의 구조와 지식체계 간에는 심리적 연상 작용을 통한 대응관계가 성립하며, 이에 따라 과거의 체험은 한편으로는 지식으로 저장되고 동시에 생생한 기억’으로서 반복적으로 소환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컴퓨터의 아이콘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다시 열어 내는 방식과 유사하다. 물론 기억술은 특정한 상징체계와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비법이 아니라 해당시대의 세계관과 연관된다.

기억과 역사성

‘기억술’의 예가 보여주듯, 전근대 세계에서 기억이란 상상적 공간의 이미지에 의해 매개됨으로써 근대 역사학이 추구한 추상적인 체계와는 달리 항상 생생하며 현재적 – 반복적 – 이었다. 전근대 적인 공간의 스키마(schema)는 근대적인 역사적 시간의 스키마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집단기억’이 ‘역사’에 의해 대체되는 과정은 곧 공간 스키마가 시간 스키마에 의해 대체되는 과정이며, 그것은 생생한 ‘이미지’가 추상적인 ‘지식’의 체계에 의해 대체되는 과정과

결부된다. 근대 역사철학과 역사학은 지적인 추상화에 의해 균질화된 시간의 스키마를 창조해냈고 그것은 곧 ‘진보 (progress)’ 개념과 결부된 근대적 세계관으로 절대화되었다. 이제 역사적 시간이라는 추상적 선분 위에 역사적 사건들의 점이 찍힌다. 이 근대적 시간의 스키마는 이른바 ‘역사주의 (historicism)’를 통해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 역사철학과 역사학에 의해 유포되어 19세기 서구세계를 풍미했던 이 정신 조류는 19세기의 역사적 체험에 걸맞게 역동적 변화로서의 역사’라는 개념과 이미지를 유포시켰다. 역사주의의 관점에 의거해볼 때 모든 사태(事態)는 오직 일회적으로 발생하고 각기 고유하다. 과거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으며 현재와 엄연히 분리된다. 이에 따라 모든 개별자는 자신의 시대에 귀속되어 있다는 것, 즉 ‘역사성(historicity; Geschichtlichkeit)’ 이 세계관적 근본원리로 대두된다. 이제 역사가는 개별 사건과 과정들의 연쇄를 오로지 시간적 패턴 속에서 규명할 것을 요청받는다. 정태적인 공간 스키마로는 더 이상 우리 존재의 ‘역사성’을 포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처럼 절대화된 변화의 의식과 통일적인 시간 스키마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19세기 역사가 드로이젠(Johann Girter Droysen)은 바로 역사의 시간적 연속성’에서 변화무쌍한 개별자들 을 내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았다. 역사주의’가 내세웠던 시간의 스키마는 이처럼 역사의 연속성 을 확고한 발판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 발판은 이후 세기말과 세계 대전이라는 역사적 단절을 거치며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과도한 변화의 체험은 다시금 정태적인 공간 스키마에 대한 향수를 낳았다. 20세기 역사담론의 중심 화두는 무엇보다 공간이다. ‘공간화된 시간은 ‘진보’ 의식으로 대변되는 시간 스키마의 붕괴에 대한 20세기적 대안이었다. 아날 학파의 장기지속(longue durée) 개념이나 독일 구조사의 구조(Struktur) 개념이 그 주요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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