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공간의 관련성에 대한 성찰

기억과 공간의 관련성에 대한 성찰이 본격적으로 시도된 것은 20세 기 말엽에 이르러서였다. 삶의 안정성과 지속성에 대한 시대적 염원 이 배가될수록 기억이 안주할 수 있는 친근한 장소가 더욱 절실해졌고 이제 장소를 마련하는 일(place-making)’ 이야말로 무엇보다 중 요한 문화적 사명이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경향을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이 바로 ‘기억의 터 (lieux de mémoire)’ 개념이다.

피에르 노라의 기억 개념

이것은 프랑스 역사가 피에르 노라(Pierre Nora)가 기획한 총 7권짜리 대저작의 제목으로서 처음 등장했다. 노라가 이끈 ‘기억의 터 연구는 모리스 알박스의 ‘집단기억’ 이론 을 19~20세기 프랑스사 연구에 적용한 것이다. 여기서 터(lieux)’ 는 구체적인 공간을 지칭하지 않고 공간의 메타포로 기능한다. 즉 그것은 단순한 기념장소들이 아니라 진실한 기억의 부재를 나타내는 상징화된 이미지이다. 노라의 논지에 따르면, 프랑스 민족이 이 전에 지녀왔던 ‘기억의 유대들(milieux de mémoire)’이 더 이상 존 재하지 않게 되어 그들의 집단기억이 더 이상 생생하게 불러일으켜지지 못하는 시점에 그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유사)기억 형식이 등장한다. ‘기억의 터’란 단지 기억의 흔적, 또는 잉여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오로지 해석에 의해서만 의미를 획득한다. 노라에 따라 프랑스적 기억의 터에 속하는 대표적인 몇몇만 들어보면 파리의 팡 테옹(Pantheon)이나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삼색기 또는 ‘자유-평 등-박애의 구호나 랭스(Reims)에서의 성유식 의례, 그리고 인권선언문, 혁명력(革命曆), 나폴레옹 법전, 더 나아가서는 에른스트 라비스(Ernest Lavisse)’가 편집한 27권짜리 『프랑스사』 등이다.

이와 같이 기억의 터는 환기력을 지니는 특정한 사물이나 장소, 기억을 담고 있는 상징적 행위와 기호, 또는 기억을 구축하고 보존 하는 기능적 기제들을 총망라하는 개념틀이다. 노라가 역사가와 역사 서술까지도 이에 포함시켰다는 점은 기억의 터가 단순히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을 암시하고 있음을 알려진다. 그것은 자발적이 아닌 인공적인 기억의 결절점들이다. 이제 사라져가는 기억은 오직 그것에 대한 성찰 속에서만 존재한다. 예를 들어 팡테옹이 기억의 터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기념할 만한 유서 깊은 장소여서가 아니다. 그곳은 더 이상 프랑스인들에 게 생생한 민족적 기억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오히려 팡테옹은 이 제 프랑스인들이 오래도록 그것을 통해 민족적 기억을 가꾸어왔던 흔적으로만 의미를 갖는다. 즉 기억에 대한 기억을 일깨우는 매개체가 바로 기억의 터이다. 그것은 어떠한 지시대상도 아니며 단지 자기 자신을 지시할 뿐이다. 이처럼 자기준거적인 기억의 터는 기억과 역사에 대해 성찰하는 일종의 메타기억이다. 노라의 어법에 따르면 그것은 기억과 역사의 모순적 변증법’의 한가운데에 기억의 형태 변이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노라의 ‘기억의 터’ 개념은 20세기 후반에 와서 집단기억이 다시금 공간의 메타포와 결합되어가고 있음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파편처럼 분산된 기억의 흔적들은 더 이상 고전적 역사주의가 내 세웠던 ‘연속성’의 스키마로는 결속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억의 터가 전근대적인 공간 스키마의 복 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새로운 점은 공간이 환기력을 지니는 상상적 이미지를 담보하지 못하고 오직 이들의 흔적을 암시하는 불분명한 메타포로만 기능한다는 사실이다. 이 새로운 공간은 문화철학자 카시러(Ernst Cassirer)가 문화의 본질적 구성요소로서 강조했던 이른바 ‘상징성(symbolische Prägnanz)’ 을 결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기억이 기억의 수사(修辭)에 의해 대체되는 양태를 부정적으로만 평가할 필요는 없다. 기억의 터는 역사의 시간 스키마와 기억의 공간 스키마가 양자 간의 모순적 변증법’을 거치며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이전의 대립관계를 지양하고 보다 반성적인 새로운 형태의 기억으로 통합되어 감을 말해준다. 그 자체가 일종의 역사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는 기억의 터는 역사를 거부하기보다 그 지평을 확대하려 한다. 그것은 결국 기억의 도전에 직면한 역사학이 고심 속에 마련해낸 응전의 전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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