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서술의 미적 본성

기억은 근본적으로 심미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미 지나가버린 이 상, 현실적 이해관계로부터 상대적으로나마 자유롭다. 마치 예술품 을 대할 때 그러하듯이, 우리는 갖가지 옛 일들이 펼쳐 보이는 고통 과 애환, 또는 기쁨과 영광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음미한다. 물론 정작 미적인 것은 과거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일 것이다. 지나간 과거는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특수한 재현(representation) 형식을 통해서만 우리 앞에 현시된다. 이 처럼 현재화한 과거는 우리에게 친근감과 이질감, 관심과 초연함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그 둘 사이의 긴장감을 통해 미적인 향유를 제 공한다. 크게 보아 기억의 한 방식인 역사 서술도 이 같은 미적 본성을 지닌다.

앙커스미트

역사 서술의 고유한 재현방식과 미적 차원에 관해서는 무엇보다 네덜란드 역사이론가 앙커스미트의 논지가 돋보인다. 그는 역사 서 술에 의해 재현한 것이 과거의 실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을 강조한다. 역사 서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대체하는 무엇인가를 재등장시킨다(re-present). 그것은 인위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인식론보다는 미학적 카테고리로 파악하는 편이 합당하다. 앙커스미트에 따르면, 재현된 것과 과거는 지시(reference)의 관계가 아닌 관련성(aboutness)’으로 설정하는 것이 옳다. 그것은 일종의 은유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재현과 재현되는 것의 관계 가 비결정적이라는 점은 역사 서술이 성립하기 위한 필요조건에 속 한다. 따라서 과거를 가장 적절하게 재현할 수 있는 선험적 기준이 요청되어서는 곤란하다. 역사 서술은 객관적 지식보다는 미적 또는 교육적 효과를 추구하기 때문에 그것이 기준으로 삼을 것은 경쟁상 대인 여타의 재현들뿐이다. 결국 앙커스미트는 이러한 논리를 통해 역사 서술의 본성이 과거 사실의 객관적 인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언어적 구성물, 즉 작품을 창조해내는 데 있다는 점을 부각 시킨다. | 과거의 재현에 있어 이처럼 주관적인 구성의 측면을 강조하는 시 각과는 달리 역사의 객관적 흐름 자체가 미적이라고 보는 주장도 있다. 20세기 초반 네덜란드의 대표적 문화사가 호이징아(Johan Huizinga)는 인류역사가 본래 극적이고 회화적인 성격을 지녀왔다. 고 주장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역사는 생동하는 인간들의 영웅 적 행위가 펼쳐지는 무대였다. 역사가들이 정치적 사건을 서술하는 데 몰두했던 것은 그것이 역사에서 실제로 지배적으로 작용했기 때 문이다. 역사 서술은 역사가의 자의적인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실 제 사건을 반영했다. 그러나 근대에 접어들어 역사는 이 같은 본래 의 모습을 잃어갔다. 19세기 중반 이래 점차 자리잡아간 산업사회는 비개성적이고 집단적이며 경제적인 힘을 역사의 무대 전면에 등장시켰다. 호이징아는 이를 ‘역사의 형식변형’이라고 일컫는다. 그가 보기에 영웅적인 행위와 극적인 사건 대신 익명적인 대중집단의 도에 의해 사회구조적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근대는 역사학의 영역에 속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사회과학의 영역에 속한다.

이와 같은 시각은 20세기의 사회·구조사 연구가 성립되는 한 계 기가 되었다. 근대 이후의 역사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역사가들은 종래의 정치적 사건과 인물 위주의 역사학에 형식변형’을 가할 필 요가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역사학은 사건의 묘사 보다는 구조적 변화의 해명을 주된 과제로 삼게 되었고, 이에 따라 수사적 표현법에 의한 이야기식 서술보다는 분석적 개념에 기초한 과학적 설명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객관주의적 시각은 경험주의적 역사 연구자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서, 이야기식 서술에 대한 찬반의 입장과는 별개로, 그것과 (사회)과학적 연구를 양자택일의 문제로 본다는 점에서 앙커스미트와 같은 역사이론가의 시각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앙커스미트의 시각으로는, 과거가 어떠한 모습이든 간 에 그것의 역사학적 재현은 언어적 구성물의 형태를 띠게 된다는 점 에서 본원적으로 미적인 차원을 지닌다. 다시 말해, 역사 서술이 미 적인 이유는 반드시 아름다운 대상을 다루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속성 자체가 미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미적인 것(the aesthetic)’의 범주는 ‘아름다운 것(the beautiful)’으로 한정되지 않으며, 현실로부터 자율적이면서 내적인 긴장감과 유기적 질서를 지닌 구성물들에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 역사 서술은 분석적 개념들을 도입할 때조차 이들을 한 편의 독창적인 내러티브로 엮어내는 한 여전히 미적이다. 앙커스미트는 이러한 점에서 역사 서술이 본원적으로 이야기의 성격을 지닌다고 말한다. 물론 그는 이야기를 좁은 의미의 이야기 (story)로 한정하지 않으며 언어적 재현 일반으로 확대 한다. 이야기란 특정한 대상을 지시한다기보다, 오히려 자율적으로 구성된 언어의 질서이다. 이러한 원리에 비추어볼 때, 역사의 이야기적 성격과 과학성은 반드시 모순되지는 않으며 양자는 상호보완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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